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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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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중학교의 위치
삼남면은 울주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문수산, 남쪽에 정족산, 서쪽에 신불산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면적은 31.12km²로 울산광역시의 3%, 울주군의 4%에 해당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서쪽의 영취산(靈鷲山 1,059m), 신불산(神佛山 1,209m), 간월산(澗月山 1,083m)에서 갈라진 능선과 산록군은 완·급경사를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 있고, 삼동면과의 경계지점에는 해발 150m∼250m의 저산성산지(底山性山地)가 발달되어 있으며, 이와 대칭을 이루는 북동 내지 남서방향의 넓고 길다란 곡저지형(谷底地形)이 형성되어 있다. 하천은 곡저지형의 바깥부분에 형성되어 북동방향의 태화강 상류로 유입되며, 가천리 일대는 선상형지(扇狀形地)가 발달되어 과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소구릉산지는 과수원단지, 저지대는 논농사의 용도로 이용되는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동으로 삼동면, 서로는 상북면, 북으로는 언양읍, 남으로는 양산시 하북면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넓은벌(平:버덩·伐·閥·野·들)을 이룬다.
삼남중학교 인근의 명승지
명승지 사진예로부터 자연경관이 수려했던 이곳은 그동안 엄청난 시인 묵객들이 다녀갔는데, 이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손들의 큰 기쁨이다. 또, 인근에 각종 문화유적들이 많아 휴일이면 인파가 전국에서 모여드는 삼남면의 자랑거리이다. 외국인들로부터 더 호평을 받고 있는 자수정을 생산해 내는 자수정 광산 또한 우리지역의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이다. 삼남의 자수정은 루비의 붉은 색과 산이 높고 물이 맑은 우리 고장에는 명승지 또한 많다. 이중에서도 작천정과 자수정 동굴은 울주군에서는 물론 영남일원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작천정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하천의 바위가 넓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맑고 깨끗한 물 역시 작천정의 자랑이다.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수려했던 이곳은 그동안 엄청난 시인 묵객들이 다녀갔는데, 이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손들의 큰 기쁨이다. 또, 인근에 각종 문화유적들이 많아 휴일이면 인파가 전국에서 모여드는 삼남면의 자랑거리이다. 외국인들로부터 더 호평을 받고 있는 자수정을 생산해 내는 자수정 광산 또한 우리지역의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이다. 삼남의 자수정은 루비의 붉은 색과 사파이어의 푸른색을 띄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고장의 명품인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광물인 자수정이 나왔던 이 광산은 이제 국민관광지로 더 각광을 받고 있어 앞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이곳은 관광지로 부가가치가 높아 지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남면의 전설
① 평리 욕바우(욕바위)
상평 마을 상단부인 큰 봇도랑 위 봉화산 돌출부의 끝머리에 높이 약 7∼8m 가량 되는 바위가 서너 개 모여 있었다. 마위들에 관개(灌漑)하는 큰봇도랑, 갓봇도랑의 역사나 보정비를 할 때 보간구(보 관리인)가 아침 일찍 이 바위에 올라 보정비에 따른 연장을 가지고 나오라는 소리를 육성으로 고함을 질러대며 외치는 곳이었다. 즉 "아침 일적 먹고 지게, 바지게, 꽹이, 꼬꽹이, 소시래이, 호미, 삽을 가지고 오이소" "그리고 헌 가마니이나 헌 성피때기 있으면 가지고 오이소" 라고 육성방송을 하였다. 마위들의 경작자는 주로 언양읍 사람이 많았으므로 서부리, 남부리, 평리를 향해 고함질러 댔다. 아침의 적막을 가르고 멀리까지 울려 전달되었다. 바람이 역방향으로 부는 날이면 못 들었을까 봐 물을 건너 언양읍 방천뚝을 따라 방천목, 서부리, 남부리, 소전걸을 따라 내려가며 외쳤다. 수리시설 정비에 따른 인부 동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욕바위에 올라 이번에는 쌍소리 욕을 걸쳐서 고함지르므로 '욕바우'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교동구획정리사업으로 없어졌다. 그 유명했던 보강구는 정거정 마을에 살았던 염 작지(廉 作之)라는 노인이었다. 염 노인은 새경으로 가을 추수기에 한 마지기 당 나락단(벼단) 한 단식을 거두어 새경으로 하였다.

② 신불산의 애환
신불산 사진신불산이라고 산 이름을 언제 부터 부르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문헌상으로는 그 다지 오래되지 않았으리라 짐작이 갈 뿐이다. 남으로는 통도사 뒷산인 영축봉으로 부터 동남으로 내리 뻗는‘무늘등’을 경계로 하고, 북으로는 간월산을 경계로 한 '쇠판골' 능선을 가장자리로 하여 병풍처럼 가천마을을 감싸고 있다. 영축봉 바로 밑은 영묘한'금강골폭포'가 우수기에는 장관을 이룬다. 언양헌지 산천조에 보면 금강골 폭포를 옛 어느 시인이 금강산 폭포를 비유하여 노래한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이란 시영(詩詠)을 보게 되며, 봄이면 산나물을 뜯으려 원근 사람들이 산정에 위치한 '가천재(주개덤)'일대에는 '반달비', '곤달비'를 뜯고, 산안 '큰골' '작은골'에는 '참나물', '호망추', '배뱁추', '더덕' 등 각종 산나물을 뜯고, '고사리밭' 등에는 '고사리', '꼬치미'를 채취하기도 하였다. 여름이면 계곡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가운데 우거진 녹음 속에 마을 소를 방목하여 목장이 되기도 하고, 또한 '큰골' '작은골' 비탈은 녹비(綠肥) 예초(刈草)장이 되기도 하였다. 가을에는 '무늘등' 금강골 '큰가거내' '작은가거', '큰골' '작은골' 쏘다니며 머루 다래 '사리버섯' '송이버섯' 따다 언양장, 신평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다. 겨울이면 땔감(柴木)의 채취, 나무함지(函), 남바가지, 각종 농기구 자재(資材)의 원산지 이기도 하였다. 우리들 삶에 큰 도움을 주는 보고(寶庫)이자. 젖줄이기도한 신불산이다. 이름만 전하는 옛 절터에서는 기와장이 조각이 발견되고,‘쇠판골’에는 야철장이 있었다는 곳으로 시우쇠 덩어리가 발견되고 있으며,‘점터골’에서는 엽전을 주조한 곳이라고 전해오는 등 전설이 곳곳에 흩어진 채로 전해오는 신불산천이다. 그러나 워낙 험한 신불이기에 임란 때는 왜적놈의 간장을 서늘하게 한적이 있는 단조성지(丹鳥城址)가 산정에 있고 1950년대 공비( 共匪)들이 준동(蠢動)이 극심하였다. 특히 682 고지에는 그들의 철옹성같은 근거지가 있었다. 지금은 '둘산등' 바로 밑 산중턱까지 배밭이 되고, 중턱에는 뛰엄 뛰엄 농장이 들어서고 밤이면 전기불이 산 중턱까지 밝게 비춘다. 밤이면 싸늘한 산바람이 산 정상(頂上)에서 내려오는 고요한 산정(山情) 야경(夜景)을 맛(味)보는 신불산이다.

③ 우리 고장의 전설 : 문동수네
“애취! 이놈의 고뿔아 문동수네 맏며느리 집으로 가거라.” “애취! 이놈의 고뿔아 들내(加川)문동수네 맏며느리 집에 가거라” 전설로 구전되어 오는 말은 다분히 무속적이다. 지금까지도 이 지방에는 간혹 고뿔(감기)이 걸렸을 때 약 대신 물리치는 방법을 써 왔다. 이 방법은“애취! 이놈의 고뿔아 들내(加川) 문동수네 맏며느리 집에 가거라”하고 물리친다. 그 무당(무꾸리)의 방법은 부엌식칼을 시퍼렇게 갈아 날을 새우고, 한 바가지 물에 잡동사니 음식을 풀고, 환자의 머리를 이 물바가지 앞에 수그리게 하고, 부엌칼로 물바가지를 탁탁 몇 번 두드리며 환자의 꼭지 머리카락을 몇 번 뜯으면서, 사설을 섞어 가며“애취! 이 놈의 구신아 듣거라 보자---한바탕 호통을 치며 꾸짖듯이 달래듯이 푸닥거리를 한 뒤, 돌아서서 물바가지 물을 훽 뿌리고 부엌칼을 대문(삽짝) 쪽으로 내던지며, ---"고뿔아 들내 문동수 맏며느리 집으로 가거라”하며, 그 자리에 칼로서 열 십자를 쓱싹 끄어 놓고 그 위에 빈 바가지를 엎어 놓는다. 그러나 문씨 집터 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고장산 발치 대가천마을 보림이 근처인 듯 하다. 현 가천리 396번지 주변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기와장(재깨미)이 간혹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문동수네 집터가 아닐까 하는 추리만 무성하다.

④ 우리 고장의 민담 : 가화만사성
옛날 옛적 산마을 어느 집에 노인 내외, 젊은 내외 네 식구(眷口)가 살았는데, 어느 날 각각 산으로, 들로, 마을로 볼일 보려 나갔다네.
며늘아기 어쩌다 실수하여 빨랫감을 태웠단다. 그 중의 한 벌 옷은 부자(父子)가 같이 입는 나들이의 큰 옷이라, 큰일났네 큰일났네 죄책감에 사로잡혀 한나절을 근심으로 보냈단다. 어느 듯 때가되어 나간 식구(眷食)들 돌아 왔다네.
시아버지 하시는 말씀, "아가아가 며늘아가 너의 안색 보아하니 수심이 짙었구나." 하니 며늘아기 "나들이옷을 태웠다." 고 고백하니 시아버지, 이 말을 듣고 "걱정 말라 걱정 말라 너의 과실 아니로다." "그 솥은 내가 샀고, 그 솥을 사올 적에 땔나무를 아끼려고 밑 엷은 것을 골랐기에 이런 변고 생겼구나." "밑 두꺼운 솥 샀더라면 이런 탈은 없었겠지 내 잘못이 아닌가".
아들서방, 이 말씀 듣고 나서며 하는 말이 "아버지도 저 아낙도 잘못한 일 전혀 없소", "며칠 전에 장작 팰 때 잘 타라고 잘게 팬게 불길이 거세어져 빨랫감을 태웠구먼요". "오로지 이번 일은 내 소치로 소이다". 끝으로 시어머니, 다 듣고 하는 말씀, "망영이지 망영이지 이 놈의 할망구가 마실은 무슨 마실", "잠자코 집에 있어 솥 가나 돌보고 빨래나 도왔더라면 이런 일 있었으랴".
한결 같이 권속(眷屬)이 아래를 사랑하여 제 각각 그 자성(自省)하니 한집안이 화목하여 모든 일이 절로 되니, 가화만사성 아닌가. 이 고담은 요순(堯舜)의 화(和)의 본(本)이요, 제가(齊家)의 원리임을 설하고 있다. 한 가정 뿐 아니라, 모든 직소(職所)에서 화목하는 길을 깨우치고 있다.

구술자:가천리 신 금조(1922년생).